수요일, 9월 27, 2006

영주권 자료 1

영주권 관련 자료들은 다른 웹에도 많이 있지만, 이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서 제 case를 후기로 적습니다. california에서 석사/박사를 했고, 곧바로 private company로 취업을 했습니다. 작년말 부터 서류준비를 해서,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입사할때 영주권/비자 문제는 100%회사에서 support하는 조건이어서 서류보내는 우표값부터 변호사비등 모든 경비는 회사에서 부담하였습니다. case는 EB-2 입니다. EB-1이나 EB-2(NIW) 와는 달리 PERM (Labor Certificate)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회사측에서 position광고 등등 귀찮은 paper work이 있는 단점이 있지만, 새로운 PERM제도가 작년 3월말부터 시작되어서 서류처리 속도가 많이 빨라 졌습니다. 소요기간.....--------------------------------------------------------- (1단계) PERM (Labor Certificate) : ~두달 (2,3단계 동시접수) I-140 : ~두달 I-485 : 네달 (승인된후 4일후에 카드가 배달되었습니다) --------------------------------------------------------------------- 올해 3월초에 California center로 서류가 들어갔는데, 3주후에 Texas로 옮겨 졌습니다. 집중국 (centralization center)방식으로 Texas에서 계속 서류가 진행이 되었는데, 그래서 좀 더 빨라 진것 같기도 하고, 워낙 case by case라서.. Perm 신청전에는 회사측에서 30일동안 지역 신문광고, IEEE나 유명한 저널에 position광고등을 해야하고, 마땅한 미국인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guideline을 줍니다. 또, prevailing wage를 받아야하는데, EB-2 case 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income이상을 받고 있음을 노동부로 부터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I-140와 I-485(영주권)는 동시에 접수가 되어서 processing time clock이 동시에 움직입니다. 이때 여행허가서와 노동허가서 (EAD : 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 신청도 동시에 합니다. 여행허가서는 2~3주만에 나오고, EAD 카드는 한달정도 만에 나옵니다. 이 카드가 있으면 H-4 배우자는 SSN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I-140, I-485신청후 한달정도가 지나면 지문찍으러 (Biometrics)오라고 연락이 옵니다. 지정된 USCIS 사무소에 가서 하면 되구요. 신체검사는 모든 case에 동일 하게 적용되테고, 다른 필요한 서류들을 기억나는데로 적어보면... 호적등본(+번역본) 성적표(대학/대학원) 여권(변호사 certified copy;+전면복사+사진면 칼라복사) I-20 / Sevis (이전학교가 있으면 모두다) I-94 여권사진 학위증 Resume 세금관련서류(tax return) 은행 잔액 증명(은행에 가서 직접 싸인이 있는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BOA에서는 다른 큰 division으로 직접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빠진게 있을지 모릅니다. .... 회사측에서 준비하는 서류는 제 서류의 10배가 넘습니다. processing timeline은 http://www.immihelp.com/greencard/adjustmentofstatus/application.html 여기에서 2~3주에 한번씩 update됩니다. 이미 접수 하신분은 WAC number로 이곳에서 진행과정을 알수 있습니다. https://egov.immigration.gov/cris/caseStatusSearchDisplay.do;jsessionid=bKcW87q1iFp_ 비자/영주권 bulletin은 http://www.shusterman.com/vb.html 신체검사소 : http://www.uscis.gov/graphics/medical_exam.htm 또, 이민 변호사님들 웹에서 많은 자료들을 찾을수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요일, 9월 13, 2006

커튼 저편의 남자

2006년 맥월드 엑스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습니다. 게으름 피우다 좀 늦었지만, 온다고선 오지 않는 귀인에게 이 글을 ..
캐드베리-쉐퍼스 CEO가 연설을 하거나 나이키 CEO가 새 신발을 내놓는다고 생각해보자. 전문지에 보도가 되고 나면 금세 잊혀지리라. 그러나 화요일 한 CEO가 무언가 발표를 하고나면 몇 분 안에 웹과 주식브로커의 컴퓨터에서 분석이 이루어질 것이다. 몇 달이고 화제가 될 것이다.
그 CEO가 스티브 잡스, 그의 발표가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을 나도 안다. 일견, 검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뭐 새로 나온 기술을 응용한 제품에 대해 말하는 어떤 사람일 뿐이다. 실은 말이다, 판촉, 제품 시연, 회사 응원의 놀랍게도 복잡하고 세련된 혼합에다 어쩌면 종교적인 부흥회 분위기까지 얹은 일이다. "커튼 저편의 남자"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정교하게 맞추고 몇 주를 쏟아부은 일이다. 나 자신 그 준비 과정을 겪고 스티브와 무대에 서보았으니, 잘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 애플 컴퓨터는 주 시장에서 조그마한 몫을 가진 중간 크기의 회사이다. 애플 매킨토시는 기업 환경에서는 드물게 보는 존재이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애플 호환 버전을 내놓지도 않는다. 달리 말하면, 연간 매출에서 캐드베리-쉐퍼스 보다 조금 크고 나이키나 마크&스펜서와 비슷하다.
그런 비교는 기업계에서의 애플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뭔가 부족하다. 핵심 요소, 스티브 잡스 말이다. 단지 한 회사 - 픽사 만이 주장할 수 있는 요소. 기업계에서 락스타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것은 상당 부분 스티브와 그의 발표 방식 탓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방법은 공개 발표, "키노트" 에서 주력 상품을 공개하는 것이다.
스티브는 몇 주 전에 키노트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후보가 될 전 제품과 기술의 리뷰로부터. 개발과 출시 일정은 한참 뒤가 되지만, 선택한 제품들이 키노트할 준비가 되어야만 만족한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어려운 선택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진행 중인 일이므로, 미완의 소프트웨어를 보고서 미리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실제로 리허설에서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심각해졌던 일이 없지 않다.
불세례
이 준비의 첫경험은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 키노트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던 dvd 기록을 할수 있는 새 맥이 주제였다. 스티브는 새 소프트웨어, iDVD의 기능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애플의 DVD 소프트웨어 제품 책임자로서, 나는 스티브가 필요할듯 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나와 팀원들은 5분 가량의 발표를 위해 수백 시간을 쏟아부었다. 두어 달 후 내가 생각하는 가장 흥미로운 측면을 강조하는 데모를 위해 스티브가 불렀다. 물론 그는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절차는 그래도 유용한 것이다. 이런 데모의 요점에 따라 그는 전체 발표를 가다듬고, 제품 하나하나가 차지할 시간을 결정했다.
그 다음, 무대에서 DVD를 만드는데 쓸 영화, 사진, 음악을 찾아야 했다. 대체로 클립아트를 쓰거나 비디오 제작자를 고용해서 "홈 무비"를 만들어 낼 일이다. 스티브는 내용이 훌륭하게 보이면서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해서, 애플 사람 모두가 최고의 홈 무비와 사진을 제출하기를 요청했다. 금방 재미나고 멋지면서 감동적인 영상과 사진을 잔뜩 받았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그 대로, 그는 대부분의 내용을 싫어했다. 예닐곱 번 그 과정을 거듭했고, 당시에 나는 말도 안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이 초기 내용보다 훨씬 나았음은 인정한다.
그리고 데모. 스티브가 할 과정 하나하나, 프로그램이 이미 실행되어 있을지, 어떤 샘플을 실행할지, 죄다 말이다.
데모가 준비되고 나서 내 역할은 소프트웨어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스티브가 갈아엎고 싶어할지를 대비해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주위의 일들이 돌아가는 것을 관찰할 기회이기도 했다. 큰 키노트에는 개별적인 작업을 수행할 팀을 포함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수천 명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는 팀. 자동 연단, 이중 무대, 비밀 문 등을 갖춘 무대를 만드는 팀. 조명, 음향과 각종 효과를 관리하는 팀.
그리고 최신의 영사장비를 설치하고 조정하는 팀과 그 백업. 웹캐스트, 행사에 필요한 모든 비디오의 재생을 위해 외부에 세운 거대한 영상 트럭. 그리고 키노트에 사용할 컴퓨터들을 설치할 사람들은 스위치 하나로 전환할 백업을 최소한 하나는 갖추었다.
물론, 비밀 엄수를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브의 발표는 깜짝 효과를 필요로 한다. 일단 리허설이 시작하면, 보안 요원들은 호사가는 제외하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 뭐 하나 넘어가는 법이 없다. iDVD 의 리허설에서 스티브는 DVD 플레이어의 리모컨이 무대에 서고 싶은 위치에서 동작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중계장치가 만들어지고, 리모컨 작동이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새까만 무대에 스티브가 올라 보기에 단순한 데모를 할 때면, 그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및 각지의 모든 인원의 에너지와 재능을 모두 모아 관중에게 내붓는다. 나는 햇볕을 자그만 점에 모아 불을 당기는 돋보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 년 후, 키노트에서 시연을 요청받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시연이 뭔지 배웠다. 2001 년 중반, DVD 제품뿐 아니라 애플의 전문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파이널컷 프로를 맡게 되었고 2002 년 초에 새 버전이 나올 예정이었다.
스티브는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는 시연하지 않았다. 언제나, 기능과 작동에 더 익숙할 제품 부서 사람에 의존해 왔다. 그 일이 내게 떨어졌다. 그것은 내게 애플에서의 최고와 최악의 순간이었다.
보통 스티브는 키노트 이틀 전에 리허설을 한다. 첫날에는 관심을 집중해야 할 부분. 신제품의 제품 책임자와 기술 책임자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며 방에 있다. 이 사람들은 스티브의 임시 관객이기도 해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애플의 디자인 팀의 도움을 얻어, 그는 대부분의 슬라이드 내용을 직접 쓰고 고안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발표의 부분부분을 다듬고, 스티브와 프로듀서는 그 자리에서 파워북으로 수정해서 고친 슬라이드를 바로 시험한다. 그 날 스티브는 발표의 모든 측면을 꼼꼼히 따져본다. 최대 효과를 위해 내용과 흐름을 이리저리 바꾸어 본다. 주력 상품을 새로 소개 할때면, 홍보를 위해 애플의 TV 광고를 보여주곤 한다. 광고는 리허설 몇 분전에 완성되기 십상이다. 때때로 여러가지 버전을 보여주고 반응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
막판
발표 전날이면 자리가 잡히고, 드레스 리허설을 한두 번 한다. 사외 발표자들은 이틀째에 키노트를 해본다. (새 아이팟이나 랩탑 같이 극비 영역의 리허설은 제외) 스티브는 시종일관 극도로 집중한다. 참석했을때, 그의 모든 에너지가 애플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집중된다. 리허설에서도, 개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부분 100% 비즈니스.
5분의 시연을 위해 몇 주를 보내면서 적절한 샘플을 고르고, 내 생각에는 다듬고 발표를 연습했다. 내 상사, 그 위의 상사가 응원차 참석했고 스티브는 버릇대로 관중석에 앉았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스티브의 레이져 같은 눈빛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연이 시작한지 1분 쯤 지나 스티브가 나를 중지하고 말했다. "제대로 하거나, 키노트에서 시연을 빼거나 해야겠군."
나는 좌절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아니 대꾸를 해야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내 상사 필 쉴러(키노트 발표로 단련되 애플 마케팅 책임자)가 구원에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그들은 내 시연을 다듬는 일을 거들었다.중요한 것은, 필의 충고였다. "홀에 있는 6000 명 맥 팬들은 적이 아니라, 최고의 친구란 말일세."그리고 다음 날 마지막 리허설에서, 스티브는 다시 참관했고,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기분이었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무대 차례를 기다리며 첫 줄에 앉아 있으려니 행사의 압박이 나를 덮쳤다. 실내의 수천 명, 웹캐스트를 보는 5만 명. 그것은 바로 압박의 정의였다. 내 바로 앞 순서를 스티브가 시작했고, 심장이 벌컥거렸다. 수만 개의 눈동자가 내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 무너질까 두려워졌다. 공개 석상에서의 연설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런 기회는 처음이었다.
부제작자가 와서 무대 옆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둠 속에 서서 스티브가 나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펼치는 광경을 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5분, 5분이면 다 끝나는 일 아닌가. 5분 만 버텨내면 괜찮을 것이었다. 나는 층계를 올라 무대에 섰고,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시연은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관중은 제품을 사랑했다. 환호성은 놀라운 흥분을 선사했다.
끝나고 나는 잘 했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중 하나는 바로 스티브의 칭찬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키노트를 두 번 더 했고, 매번 나는 스티브의 가혹한 첫 리허설에 감사했다. 그는 나를 몰아붙였지만, 결국 그 덕분에 나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애플에 있어서 스티브 잡스의 가장 중요한 영향력이다. 다른 사람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 있어서도 최고가 아니면 참지 못한다는 것.
* 마이크 에반젤리스트는 2002 년 애플을 떠났고, '내가 아는 잡스(Jobs I've Known)'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고 있다 - http://www.writersblocklive.com/

돈 벌려면 `불패 4대 요소` 잡아라 [조인스]

돈 벌려면 `불패 4대 요소` 잡아라 [조인스]
남들보다 한발 앞서려면 고급정보 가진 인맥 구축은 필수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가장 많이 필요한 게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궁금증도 하나 생긴다. 베팅할 자금이 많은 사람이 유리할까? 아니면 고급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앞서 나갈까? 내 주변에 3000만원 정도의 돈으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금이 작다 보니 큰돈은 못 벌어도 장이 좋을 때는 꽤 쏠쏠한 용돈 벌이는 된다. 10%만 올라도 300만원을 버니 친구들과 술 한잔할 용돈은 된다. 그러나 그 정도 자금으로 큰돈을 벌기는 힘들다.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기본 투자단위가 주식보다 훨씬 크다. 아파트나 상가도 몇억 단위를 훌쩍 넘어 버린다. 특히 강남이나 한강 이남 수도권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 그 액수는 더 커진다. 때문에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에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천만원 가지고 용돈 버는 주식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고수들은 인적 네트워크 '풍부' 이처럼 덩어리가 큰 부동산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성공요소는 전주(錢主), 지주(地主), 공무원, 금융권 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소위 '부동산 불패 4대 요소'라고 통한다. 이 4대 요소만 갖추고 있으면 부동산에서 '대박'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사람과 관련된 요소다. 한마디로 인적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이 부동산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학벌사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인맥중심 사회다. 지난해 모 일간지에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2 ̄3명만 건너뛰면 전부 아는 사람들이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소위 말해 '마당발'이 출세할 확률이 높은 사회다. 고위관료, 대기업 CEO, 국회의원 등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지인들이 많다'는 공통점들이 눈에 띈다. 내가 아는 부동산 '고수'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출신이 아니다. 부동산 밑바닥에서부터 고생하며 부동산을 배운 사람이 많다. 그들은 누구 못지않은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언뜻 보면 부동산하고 전혀 상관없을 듯한 사람들과도 친분을 유지한다. 마당발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이들은 자신의 이익(물론 부동산을 통한 이익이다)을 증대시켜 줄 사람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분을 맺어 놓는다. 시.군.구청의 9급 말단 공무원부터 구청장은 물론 시.구의원, 정치인, 기자, 은행원, 경찰 등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만나 친분을 맺어둔다. 추석.설날 등 때가 되면 '인사' 치레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신문지상을 통해 공무원들의 비리 보도를 접한다. 그중 흔하게 터지는 비리가 부동산 관련 비리다. 부동산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우월적 지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해 때론 사적으로, 때론 부동산 투기꾼들과 공모해 부동산을 사고 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곤 한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공무원들의 비리다. 우리나라처럼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시세차익)이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이 같은 공무원이 연루된 부동산 비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0대보다 더 바쁜 70대 할머니강남 부동산가에서 널리 알려진 박(朴) 할머니란 분이 있다. 내가 예전에 몇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부동산업계 큰손' 중 한 사람이다. 소문이지만 잠실 등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 100여 채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 이 업계 최고령 고수다. 이분은 70대 할머니지만 일할 때는 20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더 바쁘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귀동냥을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손자뻘 되는 업자들과 토론도 자주 한다. 박 할머니의 최대 장점은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사람뿐 아니라 지역 유지(경찰, 공무원, 시의원, 법조계 인사 등등) 등과 점심.저녁 약속이 끊이질 않는다. 소문만큼 인적 네트워크도 막강하다.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인사치고 이 사람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사람 관리가 철저하다. 부동산업자 입장에서는 일단 부동산 관련 공무원부터 챙긴다. 따끈따끈한 현실정보가 모두 이들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정보는 물론 도로확장과 신규도로 개설, 관공서 이전정보 등 부동산업자들에게 필요한 고급정보는 거의 이들을 통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건교부 등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 현지 시.군의 부동산 관계자, 읍.면장에 이르기까지 먹잇감(?)이 있는 곳은 예외없이 손길을 뻗친다. 지방의 부동산을 사기 위해 명의가 필요하다면 현지 마을 이장에게 막걸리 파티를 열어 주고 용돈까지 주는 일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 됐다. 지금은 일산 쪽에서 활약 중인 부동산시장의 고수 축에 끼는 A(50)씨의 경우를 보자. A씨는 고졸 학력이 전부다. 그는 부동산시장 바닥부터 시작했다. 건설 현장 '노가다'도 해 봤다.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찌라시(팸플렛)'를 돌리는 속칭 '꼬마'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하루 이틀 사이에 1000억원대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부동산업계 큰손이다. 몇 년 전 지방 모 도시에서 괜찮은 위치에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 수백억원을 동원해 그곳 오피스텔을 싹쓸이한 적도 있다. 현지 부동산업자들이 '서울 큰손이 내려와 우리 밥그릇을 죄다 빼앗아간다' 면서 항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할 정도였다. A씨 수첩 한 켠에는 대학교수 명단이 빼곡히 차 있다.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교수가 아니다. 부동산 관련 학과 교수도 아니다. 거의 다 건축이나 토목 쪽 전공 교수들이다. 이들 교수는 서울시 등 지자체의 건축심의위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재건축을 포함해 지자체의 모든 건축 관련 심의를 맡고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지자체의 중요한 부동산정책이 이들을 통해 이뤄진다. 중요 안건을 심의할 때 이들은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호텔방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개인별 경호원도 따라붙는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이들의 움직임은 통제받기 때문이다. 혹시 이들 입을 통해 고급정보가 새나가면 그야말로 부동산 관련 정책에 큰 차질이 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신상파악이 가능하고,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하다면 역설적으로 최고급 부동산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고수들은 이들의 신상파악을 위해 필사적이다. 설령 파악이 된다고 해도 접근 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A씨의 수첩엔 이들 이름이 상당히 많이 올라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그래서 A씨를 고수라고 부른다. 부동산에서 승부를 걸어 볼 생각이라면 전주(錢主)와 지주(地主)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전주는 돈을 대는 사람이고, 지주는 땅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부동산은 덩치가 크다. 그만큼 가격도 '세다'. 매력있는 부동산이 매물로 나왔을 경우 부동산업자들 사이에선 시간 싸움이다. 그 싸움은 누가 얼마나 빨리 많은 돈을 동원하느냐에서 판가름난다. 경기도 파주시에 LG필립스공장이 들어서기 몇 년 전 일이다. 그 당시 벌써 부동산업자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이 일대 부동산시장이 후끈 달아오른 적이 있었다. 벤츠 등 고급승용차를 타고 그 지역을 돌던 부동산 업자들은 최소 20억 ̄30억원을 갖고 다녔다. 부동산업자들이 벤츠.BMW 등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다니는 것도 바로 돈이 많은 업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변호사들이 개업하자마자 큰 차를 사는 이유와 비슷한 셈이다. 괜찮은 물건이 나오면 현장에서 바로 계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현장 물건을 보고 미처 돈을 못 챙겨 온 업자가 다음날 돈을 갖고 찾아갔더니 벌써 계약이 끝나버린 사례도 많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지주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땅 주인이 안 팔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때문에 땅주인을 설득해 적정한 가격에 팔게 하는 것도 기술이다. 부동산시장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려면 업자 본인이 전국의 땅주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땅주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잘 사귀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부동산도 정보싸움이다. 부동산은 전 국토가 사업장이자 경쟁터다. 그만큼 정보력이 필요하다. 그 정보력의 기본은 인적 네트워크다. 정리=이기수 이코노미스트 기획위원<(leeks@joongang.co.kr>)

목요일, 9월 07, 2006

10만달러 가지고 미국가 50개 호텔 인수한 호텔왕 [조인스]

10만달러 가지고 미국가 50개 호텔 인수한 호텔왕 [조인스]
역대 대통령들 숙박하는 호텔도 사들여

"남들은 절 호텔왕이라고 부르더군요.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할께요"최근 역대 대통령들이 숙박하는 곳으로 유명한 아이오와주의 르네상스 호텔을 3000만달러(약 280억원)에 사들인 한인이 있어 화제다."호텔 하나 사들인게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10만달러로 시작해 14년만에 50여개 호텔을 인수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호텔왕'조찬수(54)한인기독교호텔협회 회장. 1992년 선경그룹 기획실에서 잘나가는 중견 간부였던 그는 퇴직금 등을 모은 10만달러를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샌디에이고에 짐을 푼 그는 세탁소나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져보는 소박한 꿈을 가졌다. 당시 그만한 돈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곳은 세탁소 정도였기 때문.
손에 쥔 전 재산을 한 곳에 투자하려니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기도에 매달렸다."1년 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호텔업에 뛰어 들라고 하시더군요."그는 이듬해부터 모텔에서 생활하며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한달 수입이라곤 고작 1000달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호텔을 경영할 수 있는 귀중한 초석이 됐다.94년 일본계 은행인 스미토모 은행이 차압 매물로 확보하고 있던 300만달러짜리 호텔이 현금 70만달러에 급매물로 나왔다. 샌디에이고 인근 에스콘디도의 하워드존슨 호텔이었다."며칠 내로 60만달러를 채우지 않으면 계약금 10만달러마저 떼일 상황이었지만 일단 저질렀습니다. 다행히 거래를 주선했던 에이전트에서 연 10%의 금리로 60만달러를 급전으로 빌려줬어요"그의 성공 비결은 싸게 나온 '물건'을 확보한 뒤 재단장해 가맹점을 모집하는 방식이었다. 가맹점에는 그의 지분이 상당 부분 들어갔다. 6개월 후 그는 하워드존슨 호텔을 담보로 한미은행에서 300만달러를 융자받아 60만달러를 먼저 갚았고 남은 돈으로 급매물로 나온 호텔들을 싹쓸이했다. 1년만에 2000만달러의 시세차익을 올렸고 5년 후엔 1억달러로 불렸다. 종자돈의 1000배로 늘어난 것이다."신앙 덕분에 제가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습니다. 저의 행복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어요."현재 조회장으로부터 경영 기법을 배워 호텔을 인수한 한인들만 약 30여명.'나누면 커진다'는 종교적 이념을 몸소 실천하는 셈이다.그는 호텔 투자에 관심있는 한인 투자가들을 그룹으로 묶어주고 여건이 조금 부족한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줬다.영업 이익은 전적으로 매입자가 갖는 대신 조씨는 매각시 투자 자금에 대한 지분만을 되돌려받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최근엔 10만 ̄20만달러 단위의 소액 투자자들에게 1년간 매니저 생활을 한다는 조건으로 호텔 운영권을 넘기기도 한다.그의 사업은 한편으론 종교적 신념의 연장이었다. 샌디에이고의 온누리교회 장로인 조씨는 '선교 및 구제사업'으로 최근 멕시코 남주 치아파스에 4번째 교회를 세웠다. 장기적으로 멕시코 전역에 20개의 교회를 세우는게 그의 꿈이다."남들은 절 호텔왕이라고 부르더군요.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베풀어야죠. 단 한사람이라도 저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할겁니다."이지은 기자 <jelee@joongang@co.kr>미주 중앙일보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