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0월 18, 2006

`물건 살지 안 살지 눈빛만 봐도 압니다`

한입경제] `물건 살지 안 살지 눈빛만 봐도 압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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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경제 손님의 눈빛만 보고 물건을 살 의향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현대백화점 매장 베테랑 판매원의 3분의 1은 "그렇다"고 한다. 이 백화점이 우수한 실적으로 '에이스 매니저'로 선정된 매장 운영자 29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해 18일 내놓은 결과다. 35.5%는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빛만 봐도 물건을 살지 둘러보기만 할지 구분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 판매원은 "마치 애인을 쳐다보듯 따뜻하고 다정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구매할 확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행동거지를 봐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상품을 많이 꺼내 볼 때(26.9%)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 때(17.9%) 물건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 밖에 고객이 ▶사이즈를 확인할 때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 다시 왔을 때 등도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고객을 구매로 기울게 하는 화법 중 "절 믿어보시라니까요"(33.1%)가 가장 많았다. "젊어 보인다" "날씬해 보인다" 같은 아부성 발언도 효과가 있는 걸로 나타났다.김필규 기자

토요일, 10월 14, 2006

컨퍼런스 발표수준으로 힘들지만 노력하심 다됩니다..

컨퍼런스 발표수준으로 힘들지만 노력하심 다됩니다..

현재 캐나다서 4년차 조교수로 있습니다. 미국서 석박사마쳤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올때보면 읽는것을 제외하면 그리 영어 잘하는분은 별로 많지않습니다. 최근 한국에서온 포닥들을 두명데리고 있었는데.. 미국 대학에 교수로 지원하는데 추천서써달라고 할땐 조금 난감했습니다. 그분들의 영어실력은 그저 같이 연구하는분들과 어느정도 대화가 가능한 정도였지 사실 강의를 무난히 할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습니다. 그분들도 외국 컨퍼런스에서 약 5회이상 발표 경험이 있는분들이었지만..같은 한국인으로서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3시간 강의 준비를 하라고 시켰고 저와 제 동료교수 몇명에게 부탁해서 평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기대는 별로 않했는데...한분은 약 75점정도(100점) 맞으셨고 다른 한분은 30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75점 받은 분을 추천했고 다른 한분은 냉정하지만 추천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본인이 3시간 연강하는 능력을 가졌는가 입니다. 특히 화학이나 기본 과학을 가르치시거나 회계등은 보통 100명이상이 수강하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과목을 가르치려면 적어도 혼자서 3시간 떠들 정도는 되야 하겠구요 (매번 그걸 외우는것은 불가능하니까) 두번째는 답변능력입니다. 사실 답변하는것이 일방적 강의를 하는것보다 두배이상 힘들다는것은 아마 경험해보신분이라면 아실겁니다.. 학생들마다 각 지방색이 강한경우 발음이 많이 달라지고..저의 경우는 호주 학생들의 발음은 70%밖엔 못알아 들어 두세번 되묻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나 캐나다가 한국 사람들에겐 좀 편안한듯.. 세번째는 토론을 lead하는 능력입니다. 이경우 준비를 하신다고 하여도 상황 상황에 잘 대쳐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국말로도 쉽지 않을 수 있겠죠.. 네째 발음은 노력하면 어느정도는 improve되지만 한계는 있습니다. 사실 한국 accent는 거의 없어지지 않습니다. 저역시도 강의 평가시 다른 항목의 경의 2년만에 4.5/5정도로 끌어 올렸는데..영어관련 항목은 여전히 3.5점에서 더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 잘하시면 되니까..크게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것입니다. 다섯째 쓰기 능력입니다. 영어로 글을 잘쓰는것은 한국어로 글을 잘쓰는것과 같습니다. 많이 쓰고 많이 읽으면 됩니다.. 한국식 영어문법으로 이해 하려고 하지마시고 그냥 좋은 문장 외우시고 한번 써보시고..그러면서 논문관련내용을 essay식으로 일기처럼 쓰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 날때마다 옆에있는 본토애들한테..영어 봐달라고 하고..고친것 확인하시고..비슷한 내용을 다시 써보시고..하시면 1-2년안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섯째는 문화 적응능력입니다... 제가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은 도대체 자기 어릴때 얘기하고 이곳의 문화 내용이 들어가면 이해가 되지 않는경우가 많았습니다..내가 해석한것은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나머지들은 너무 웃기다고 하는경우도 있고..참 난감하죠.. 평소에 동네에 큰 책방 (chapters (canada) and barns & noble (us))에 시간 나실때마다 가셔서 커피 한잔 가지고 않으셔서 여러방면 특히 자기 전공 관련 잡지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배워나가시고 주변에 미국애들이 모임 주선 하면 맨날 참석하셔서 적극적으로 lead해보십시요(튀라는 말은 아니고).. 그러면 아마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신뢰하는) 생길것이고 더 저극적으로 도움을 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늘 착한 학생으로 입다물고 계시지 마시고.. 모르면 꼭 물어보고 넘어가세요..우리가 서양문화를 모르는것은 당연한거고 물어서 배워가는것입니다... 일곱째 요즘은 각 중간 사이즈 이상의 대학에는 graduate teacing certificate program이라는것들이 있습니다. 때론 조금 boring하지만 그래도 certificate가지고 계시면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가능하면 teaching assistant도 함 해보시고..포닥이 TA를 받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여덟째 본인의 전공 관련 강의를 골라 적어도 4-5번정도 참관하시고 교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을 내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보면 강의를 잘하시는 교수님들이 있을겁니다.그분들에게 무조건 이멜 보내고 찾아가셔서 상황설명하시고 그분들의 노하우를 배우세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홉째 연구를 더 열심히 정진하세요.. 저의 경우 일년에 4과목 강의를 해야하지만.. 연구비를 신청할때 과목을 줄여주고 대신 시간강사비를 책정해 넣어서 현재는 3과목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공계는 1과목만 가리치는 분들도 많고요.. 학교에서 주최하는 연구비 잘따는 seminar들도 참석하시고 지금의 advisor에게 과거에 썼던 grant proposal얻으셔서 (굳히 전공 관련 상관 엄꼬) 꼼꼼히 살펴보는것도 도움이 될듯하군요.. 마지막으로 열번째..한달에 한번 또는 두달에 한번 정도 아마도 teaching support office 또는 service에 가시면 본인의 강의를 녹화하거나 (포닥이라 안된다하면 본인이 직접 녹화하셔서)가지고 가시고 평가받으세요.. 위의 항목과 관련해서 본인이 앞으로 1년반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시고 전투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하시는것이 필요합니다. 제 주의의 포스트닥들은 연구외에는 그리 열심히 준비하는걸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연구 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본인이 원하는것이 있다면..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듯 싶네요.. 물론 영어도 잘하시고 수재형분들께는 위의 사항들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중간 수준에(중앙대졸) 사람에겐 그정도는 노력해야하는것이 좋다는 생각이듭니다. 하지만 전 한국인의 능력을 믿습니다. 제 주위 친구들은 제가 캐나다서 교수하는것을 아직도 믿지못하지만.. 노력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슬람 코드 맞추자' 미국 기업은 변신중

'이슬람 코드 맞추자' 미국 기업은 변신중
미국 유명 커피체인인 캐러부 커피(Caribou Coffee)는 지난해 증시에 상장했다. 당시 일부 예리한 투자자들은 회사 정관에 특이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돼지고기나 포르노는 팔지 않겠다` 그리고 `이자를 주거나 받지 않겠다` 고?
미국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의 산물인 중동지역 `오일머니`를 자금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슬람 코드에 맞도록 스스로를 바꿔 나가고 있다. 정관을 바꾸고 수익 분배방법을 바꾸고 때로는 영업방식도 바꾼다.
일례로 캐러부는 정관에 2개 조항을 삽입함으로서 이슬람 율법체계인 `샤리아(Shariah)`에 부합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12일 AP통신에 따르면, 캐러부는 그 후 무슬림 투자자들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 대표적 서구기업 중 하나가 됐다.
`샤리아`는 돈으로 돈을 버는 이른바 `리바(이자, 웃돈)`를 금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조항은 고리대금을 금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자를 주고 받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슬람 투자자들은 자동차 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무디스 투자서비스의 중동 담당 부사장인 카리드 호우라다는 이를 두고 "많은 무슬림들은 정규적 투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이익도 내지 못하는 현금을 그냥 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고유가로 오일머니 규모가 급증하면서, 중동 투자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돈을 굴릴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미국 기업과 월가도 무슬림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우존스는 이슬람 관련 지수를 만들기 위해 지난 1999년 6명의 샤리아 학자를 고용한 바 있다. 다우존스 5000개 기업중 머크와 화이자,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마이크로소프트(MS), 휴렛팻커드(HP) 등 1800개 기업이 샤리아식 표준에 걸맞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다우존스는 60개의 이슬람 관련 지수를 관리하고 있다. 카리드 부사장에 따르면 현재 이슬람 관련 지수에 연동해 움직이는 자금 규모가 55억달러에 달하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다우존스 이슬람 투자지수의 구성종목인 한 기업은 최근 멕시코만의 천연가스 생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억6600만달러 규모의 수쿠크(이슬람 채권)을 발행했다. 독일 작슨-안할트주는 씨티그룹이 운용하는 1억달러 규모의 유로화 표시 변동금림부채권을 발행했다.
수쿠크는 이자 대신 `임대료` 명목으로 일정한 수익금을 지불한다. 이 증서는 일반 채권처럼 지급의무를 표시한 게 아니라 기계나 설비 등의 소유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쿠크 보유자는 기계나 설비 가동에 따른 이윤을 일부 나눠먹는 셈이다.
사투르나 캐피탈이 운용하는 펀드의 성장은 무슬림들의 투자 열기를 잘 반영한다. 사투르나는 샤리아에 부합하는 두 개 펀드를 운용중인데, 운용자금은 2002년 3400만달러에서 현재 3억3100만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뮤추얼 펀드 평균에 비해 여전히 작은 규모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무슬림인 모아잠 아메드는 "사투르나의 펀드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가지고 있는 자금 모두를 옮겼다"며 "투자 수익이 그간 경험했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입력 : 2006.10.14 10:22 39'

수요일, 10월 04, 2006

맨손으로 `밀리언 비즈니스` 일궜다

맨손으로 `밀리언 비즈니스` 일궜다 [조인스] 영스 드릴링 캄퍼니 김영기 사장 관련검색어 김영기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와이오밍은 미국 본토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주 가운데 하나다. 면적은 남한의 약 3배 가까운데 전체 주 인구는 한국의 중소도시에 불과한 50만명 가량이다.
북쪽으로 몬태나주가 바로 코 앞인 와이오밍의 최북단 셔리단(Sheridan)에 사는 김영기(53)씨 일가족은 그래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희소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김씨는 그러나 단순한 희소성을 넘어 하루가 다르게 셔리단의 유명인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인구 약 1만6000명의 셔리단은 와이오밍에서 6번째로 큰 도시로 북부의 핵심도시다. 그가 최근 이 곳 사宕湧?관심을 끌게 된 것은 개스 개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부터다.
"아는게 뭐 있었나요. 깨지면서 시작했지요. 이제 감이 좀 옵니다." 올 아메리칸 스타일의 레스토랑으로 기반을 잡은 김씨는 6년전 개스 개발사업에 뛰어 들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주류 인사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
고부가 가치라는 개스 개발사업의 특성때문에 사업 첫해부터 매출 규모로만 따진다면 곧바로 밀리언 비즈니스에 진입했다.
"한데 남는 게 없었어요. 굴착기 관리 사람 관리 모두 처음 해보는 것이었거든요. "
이런 식으론 백날 장사해도 손에 넣을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개스 굴착사업의 핵심을 파악해 나갔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순수입 규모로 진짜 밀리언 비즈니스로 키워냈다.
그가 소유한 대당 30만달러짜리 메탄 개스 굴착기는 3대. 셔리단 교외 야산 여기 저기에는 김씨의 회사 '영스 드릴링 캄퍼니'가 뚫은 메탄 개스전이 널려 있다. 개스 굴착사업은 시절만 좋으면 1년만 돌려도 기계값을 뽑고 남는다.
셔리단에 먼저 자리를 잡은 부모의 초청으로 80년 이 곳에 와 이민 둥지를 튼 그는 성실과 친화력을 무기로 와이오밍의 소도시를 '주름잡고' 있다. 그와 함께 시내를 돌아본 9월 초순 수퍼마켓이나 교외의 농장 음식점 어디를 가도 그는 인사를 주고 받기에 바빴다.
"셔리단 전체 주민들중에서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최소 절반은 될 겁니다. 또 제가 몰라도 저를 아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김씨는 자원봉사와 사업을 통해 이 곳의 유명인이 됐다. 셔리단 YMCA에서 무보수로 15년 가량 태권도 사범을 한 것과 90년부터 운영해 온 음식점(킴스 패밀리 레스토랑)이 이 곳에서 인맥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굴착사업을 소개해 준 사람이나 그 후 개스 캄퍼니에 다리를 놔준 사람들도 다 이 곳 주민들이다. 그러나 김씨 특유의 '마초' 기질과 다정다감함을 빼놓고는 오늘날의 그를 설명할 수 없다.
50대 중반에 5척 단구인 그는 수년전까지만 해도 '까부는' 친구들은 손을 봤다. "요즘에는 그럴 일도 없지만 특히 이민 초기에는 체구 작은 동양인이라고 놀리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그럴때마다 한번도 참지 않았어요. 수없이 붙었습니다."
김씨는 그러나 서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있어 싸움에 지건 이기건 경찰서에 간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싸움을 한 뒤 깨끗이 털어버리는 게 이 곳 사람들의 장점이라는 것. 육박전을 벌인 사람과는 싸움 뒤 더욱 친밀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주먹 싸움에서는 뒷걸음질 친 적이 없는 그 이지만 천성은 다정다감하다. 억센 액센트에 세련되지 않은 그의 영어는 장애물이 안됐다. 동네 사람들이 곧 그의 이런 천성을 알아봤다. 그가 친구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식당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전통적인 서부 스타일의 미국 음식은 부인 명애씨가 식당을 열기전 미국 식당에서 일하면서 배워온 것인데 값이 싸면서도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동네 사람들의 사교장이 되다시피 했다.
김씨는 새해 첫날과 크리스마스 연휴를 포함해 일년 내내 지금까지 16년 동안 식당 문을 한차례도 닫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잠을 잔다는 그는 "최근 들어서는 나이탓인지 조금 피곤하다"며 5~6년만 열심히 하고 사업 규모를 좀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맨손으로 와서 이 만큼 일궈 놨으니 만족합니다. 특히 아무 것도 해준게 없는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위로 딸 밑으로 아들을 둔 그는 애들이 그냥 저희들끼리 자라줬다고 몇차례씩이나 중얼거리듯 말했다.
김씨의 딸은 미시간에서 의과대학을 아들은 애리조나 주립대를 다니고 있다. 특히 아들은 골프를 늦게 배운데다 제대로 레슨도 못시켜 줬는데 와이오밍 주대회에서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며 연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김씨는 셔리단이 고향처럼 편하다고 한다. "제가 지금 어디가서 살겠습니까. 아버지는 2년전에 이 곳에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아이 둘 우리 부부까지 우리 식구들 비석 모두 만들어 놨습니다. 죽는 날짜만 새겨 넣으면 돼요."
경기도 문산 출신으로 따로 이민온 뒤 고향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다는 그는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쇠주'를 같이하는 낙이 없는 것이 미국생활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애주가인 그는 하드 리커 면허를 얻어 식당 한켠에 프라이빗 바를 만들어놓고 틈나는대로 위스키를 들이킬 정도로 술을 즐겨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이민 4반세기의 세월 술마시는 시간이 그에게는 유일한 휴식인 것처럼 보인다.
▶ 와이오밍주 셔리단은…경제적 활력 넘치는 소도시
셔리단은 와이오밍주 중앙 최북단에 자리잡은 도시. 북쪽으로 코앞이 몬태나와 주경계다.
셔리단의 한인은 김영기씨네 일가족이 전체다. 남동생과 여동생 가정 등 모두 3가구다. 김영기씨와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족은 직장에 다닌다.
셔리단은 작지만 활력이 있는 도시다. 90 번과 25 번 주간 고속도로의 교차점이 바로 셔리단 남부에 있다.
김씨 가족에 따르면 적지 않은 미주 한인들이 여행길에 잠깐씩 셔리단을 들른다고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등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셔리단은 미인을 많이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올해 미스 와이오밍인 로빈 존슨이 이곳 출신이다. 91 년에도 미스 와이오밍 틴이 이 곳에서 나왔고, 그 이전 71 년 미스 와이오밍도 셔리단이 고향이다.
소도시 치고는 경제적 활력도 넘치는 편이다. 빈곤선 이하 인구가 10% 남짓이다. 북서부의 작은 도시 치고는 양호한 수준. 근처에 수두룩한 랜치와 전통적인 석탄산업 외에도 최근 메탄개스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북쪽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라틴계 인구가 급속히 느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틴계 인구는 줄 잡아도 1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김영기씨는 “사람들이 순박하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다양한 비즈니스가 들어서기는 곤란하지만, 열심히 하면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셔리단은 옐로스톤 자락이 있는 서쪽을 제외하곤 사방이 황량하기 짝이 없는 들판이다. 하지만 작은 분지에 자리잡은 셔리단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어 도시 안에는 나무도 제법 많다. 이런 이유로 가끔씩 미국 전체 혹은 와이오밍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 선정되기도 하는 곳이다. 미주중앙일보